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엑스트라물의 유행은 수없이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눈 떠보니 엑스트라도 마찬가지죠. 여기서 말하는 엑스트라물이란 소설이나 게임 속 한 명의 NPC 혹은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 등장인물로 빙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빙의물이 강력한 힘을 가진 주인공이나 잠재력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엑스트라물을 그저 한 명의 조연인 인물에게 주목하여 이야기의 전개를 끌어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능력도 없이 웹소설 이야기 속으로 던져놓는다면 작가는 ‘어떻게 사이다 전개를 내야 할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는 능력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알고 있다’라는 것이죠.
이어랑 작가의 눈 떠보니 엑스트라는 240화로 완결이 되었습니다. 웹소설의 장점이라면 제목에서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 떠보니 엑스트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소설 속 엑스트라로 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 한 번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인물로 말이죠.
작품의 주인공인 강시언은 장르소설 편집자입니다. 일반적인 편집자도 업무량이 만만치 않겠지만 장르소설은 진입이 쉽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예비작가들의 작품을 읽오보게 됩니다. 강시언도 마찬가지로 장르소설을 읽고 ‘이 소설이 팔릴만할까?’ 생각하는 편집자였죠.
그런 그에게 ‘5권’의 책이 배달되어 옵니다. 책의 제목은 <델리피나 전기>. 편집자로서 그의 평가는 냉혹했습니다. ‘고전적이고 지루하다’라는 것이었죠. 두 권을 읽고 책을 덮은 후 평가를 해달라는 작품의 작가인 카인에게 “전개가 너무 식상하다” 며 연락을 하죠.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 ‘물린다’라는 평가에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다만 작가인 카인의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이라면 저보다 더 좋은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바꿔주세요.”라는 것이었죠.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 강시언, 그는 <델리피나 전기> 속의 한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그 인물은 작중 아무런 언급도 없던 소년병. 그에 대한 정보는 책에 없습니다. 작품 속 세계는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5권의 중 오직 2권만 읽은 책 속의 정보였죠.
다른 작품 속에서 빙의물 속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적이나 등장인물, 혹은 결말까지 알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원작에서의 답답했던 상황을 시원하게 풀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새롭게 바뀌는 이야기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혹은 ‘혹시 이 정보가?’라는 식으로 일을 잘 풀어가죠.
<눈 떠보니 엑스트라> 속 주인공은 결말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소년병이라는 세계 속 최약체 인물 중 하나가 되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됩니다.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엑스트라’라는 소재에 이야기의 절반도 모르는 주인공을 앞세운 이 작품은 여러모로 아쉽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개연성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색다름을 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답답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개연성이란, 엑스트라의 등급에 따라서 말을 걸 수 있는 인물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한 인물의 등급이 ‘하’급이라면 그 이상의 인물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연성’이 필요하고, 이것이 부족하면 말조차 걸 수 없는 것이죠. 이 부분을 더 잘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